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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 프로필·임기 1년 남겨두고 사법개혁 민주당의 공적이 되다 (고향 재산 수상)

골프 냥냥 2026. 8. 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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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분립체제에서 사법부의 수장으로 12 3 비상계엄과 윤석열 탄핵을 모두 겪은 조희대 대법원장입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이전까지만 해도 1990년 작고한 고교친구인 2021년 딸 결혼식에서 법조계에서 유일하게 참석하는 미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선비 같은 법조인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조희대 판사였지만 사법 개혁의 물결과 함께 이재명 청와대 및 여당인 민주당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프로필·임기 1년 남겨두고 사법개혁 민주당의 공적이 되다 (고향 재산 수상)
조희대 대법원장 프로필·임기 1년 남겨두고 사법개혁 민주당의 공적이 되다 (고향 재산 수상)

조희대 대법원장 프로필

  • 영어: Jo Hee-de / 한자: 曺喜大 / 본명: 조희대
  • 생년월일: 1957년 6월 6일 (2026년 나이 69세)
  • 고향: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 국적: 대한민국
  • 현재 거주지 (집):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
  • 키: / 몸무게: / 혈액형: / MBTI: / 종교: 불교
  • 학력: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코넬 대학교 로스쿨(LL.M.)
  • 군대 이력: 육군 중위 전역(군수사령부 군법무관, 1983년 12월~1986년 8월)
  • 가족: 부인(아내) 박은수, 자녀 1남 2녀, 부모님
  • 소속: 대법원 (대법원장)
  • 개인 SNS:

 

조희대 도서 출간

  • 『남녀의 성전환은 현행법상 허용되는가』
  • 『영업비밀의 침해와 그 손해배상』
  • 『만인상생(萬人相生)』(2020년 출간, 회고록 성격의 수필집)

조희대 수상 이력

  • 2020년 - 청조근정훈장

 

조희대 판사 약력

  • 1957년 - 경상북도 월성군 강동면 유금리 출생
  • 1969년 - 경주강동초등학교 졸업
  • 1972년 - 경주중학교 졸업
  • 1975년 - 경북고등학교 졸업
  • 1979년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취득
  • 1981년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 1983년 - 사법연수원 제13기 수료
  • 1983년~1986년 - 육군 군법무관 복무
  • 1986년 9월 -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임관
  • 1989년 3월 -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 1991년 2월 -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판사
  • 1992년 - 코넬 대학교 로스쿨 LL.M. 취득
  • 1995년 3월 - 서울고등법원 판사
  • 1996년 3월 - 대법원 재판연구관
  • 1998년 9월 -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 2000년 2월 - 사법연수원 교수
  • 2003년 2월 -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 2006년 2월 -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 2006년 8월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12년 9월 - 제41대 대구지방법원장, 대구가정법원장(겸임), 제20대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2014년 3월 - 대법원 대법관 취임
  • 2020년 3월 - 대법관 퇴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부임
  • 2020년 5월 - 청조근정훈장 수훈
  • 2023년 11월 - 제17대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 2023년 12월 - 제17대 대법원장 취임

비상계엄과 탄핵을 모두 겪은 제17대 대법원장 조희대

1957년 6월 6일 경상북도 월성군 강동면 유금리, 현재의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4리에서 태어나 경주강동초등학교와 경주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차례로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해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학창시절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법조계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이듬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1983년 제13기로 수료했습니다. 이후 육군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제5보병사단과 육군군수사령부에서 복무했고, 1986년 중위로 전역했습니다.

병역을 마친 조희대는 1986년 9월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하며 법복을 입었습니다. 1989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91년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판사를 지냈으며, 이 시기 미국으로 유학해 1992년 코넬 대학교 로스쿨에서 LL.M.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보수 성향의 선비 법관

귀국 후 1995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98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2000년 사법연수원 교수, 2003년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2006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차례로 역임했습니다.

사법연수원 교수 재직 당시 주례를 서고 받는 답례품도 "작은 것이라도 박기 시작하면 경계가 허물어진다"며 원칙을 중시하는 법관이었습니다. 특히 후배 법관들에게 "당사자들에게는 대법원 판결만큼이나 민사소액재판도 중요하다"며 판결의 무거운 책임감을 강조하는 법관이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재직 당시에는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 항소심에서 1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목받았습니다. 이 밖에도 BBK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을 맡아 김경준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소송 항소심 등을 심리했습니다.

2012년 9월 제41대 대구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고, 대구가정법원장을 겸임했으며 제20대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도 함께 맡았습니다. 2014년 1월 퇴임하는 차한성 대법관의 후임으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대법관 후보에 올랐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같은 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었습니다. 3월 4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대법관으로 취임했습니다.

대법관 시절 조희대 성향 및 주요 판결

대법관으로 재임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다수의 전원합의체 사건 심리에 참여해 소수의견을 다수 제시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 불렸습니다. 보수 성향이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원칙을 지키는 소수 의견을 내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2015년 1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선동·음모 혐의 사건에서 내란선동은 유죄, 내란음모는 무죄라는 다수의견을 내었습니다.

2015년 8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9억 원 전부를 불법정치자금으로 보는 다수의견을 내었습니다.

2016년 1월,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범인 임도빈 병장에게 사형이 적절한지 문제된 사건에서 사형은 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7년 12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전무의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 유죄라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8년 3월,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항의한 군법무관들에 대한 강제전역 징계처분이 적법하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8년 4월, '댓글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무죄라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8년 6월, 휴일·시간외근로 수당 중복 지급 가능성에 대해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주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8년 10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종북'으로 표현한 변희재 씨에 대해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다수의견을 냈습니다. 같은 달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에서는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유지된다는 다수의견을 냈습니다.

2018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지 문제된 사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9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강요 혐의 사건에서 뇌물죄와 강요죄가 모두 불성립한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19년 11월, 아내가 아픈 남편을 장기간 간호한 경우 상속 특별기여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같은 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조치가 적법하다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2020년 1월, 김기춘·조윤선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무죄라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대법관 퇴임부터 대법원장이 되기까지

2020년 3월 3일 대법관 임기를 마친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같은 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2020년 5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청조근정훈장도 받았습니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변호사 개입도 거부해 이때까지만해도 도덕성 흠잡을 데 없는 학 같은 참 판사라고 법조계가 인정했습니다.

2023년 8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후임 인선 과정에서 대법원장 후보군에 이름이 올랐지만 이균용 부장판사가 후보자로 낙점되면서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이균용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같은 해 10월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대법원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결국 11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은 조희대를 제17대 대법원장 후보자로 새롭게 지명했습니다.

12월 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인사청문회를 거쳤고,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92인 중 찬성 264표, 반대 18표, 기권 10표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었습니다. 같은 날 임명되어 12월 11일 대법원 청사에서 취임식을 가졌습니다.

대법원장 취임 이후 재판 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법관 증원, 법원장추천제 재검토, 압수수색 사전심문제 도입 논의 등을 추진했습니다. 2024년 1월에는 천대엽 대법관을 신임 법원행정처장으로 내정했고, 이후 엄상필, 신숙희, 박영재, 노경필, 이숙연 등을 대법관 후보로 잇달아 제청하는 등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일을 역임했습니다.

 

비상계엄과 함께 민주당 공공의적이 되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법원행정처장 등 간부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2025년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이 발생했을 때도 긴급 대법관회의를 소집하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피해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2025년 3월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 배당되자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 재판으로 회부하도록 지휘했고, 5월 1일 재판장으로서 직접 판결문을 낭독하며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 이후 6월 이재명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한 달전 재판장과 피고인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 대법원장과 대통령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검찰 및 사법부 개혁을 원하는 민주당이 추진한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도입 등 사법개혁 관련 법안에 대해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원칙론과 함께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며 정치권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조희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2023년 임기 6년의 대법원장에 임명됐지만 70세 나이제한으로 인해서 2027년 7월까지 직무를 수행 중에 2026년 8월에는 노태악 후임 손봉기 대법관 인선을 둘러싸고 그동안 쌓였던 갈등이 표출됐습니다. 청와대와의 이견이 장기화되자,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 않고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했습니다.

이대통령은 우리법연구회 출신 진보 성향의 김민기 판사를 지지했지만 헌법재판관인 남편과 이해충돌이 있다며 손봉기 판사를 제청했습니다. 이례적인 서면제청에 대해 민주당 김민석 등은 "퇴임하라"를 외치며 탄핵카드까지 고민하고 있어 임기 말년이 논란으로 얼룩지게 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퇴임 이후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에게 다시 판결을 받게 되는만큼 손봉기 대법관 임명에 대해서 반려까지 검토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대해 대법원은 대통령이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아서 민정수석과 협의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희대 재산 & 가족

부인 박은수 씨와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2024년 1월, 대법원장 공관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에 함께 입주해 거주중입니다. 재산은 2026년 공직자 재산신고 기준 18억 2000만원을 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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